심리명상 지혜

소원이루는 법(feat:소원성취 기도법)

김영국 행복명상센터 2019. 1. 29.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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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이루는 법(feat:소원성취 기도법)





한때는 소원이라는 단어가 참 좋아보였다. 

문득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희망고문처럼...

요행을 바라는 약자의 갈급함처럼..

내가 소원을 빌면 절대적인 존재가 나타나서

나의 소원을 이뤄주리라는 기대감에 빠져있다. 

램프의 요정이 나타났으면 한다. 

물론 대다수의 사람은 순수한 마음을 갖고

자신만의 꿈,목표,소원성취를 기도하며 살아간다. 

인간에게 희망은 위대한 힘을 발휘한다. 

지금 살아가는 나에게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다.

소원을 이루는법이 있다면 무엇일까?

나의 능력과 상관없이 기적처럼

그 소원을 성취하면 정말로 불행이 끝나고

행복이 시작될까?

나는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소원을 이루는 것은 좋지만

자신의 능력, 노력, 피와 땀이 깃들지 않는것을

얻고자하는 마음을 버렸으면 한다.

그것은 엄밀히 말하면 욕심이다. 

좀더 재수없게 말하면 도둑놈 심보이다. 




내가 친구보다 실력이나 능력이 떨어지는데

대학교에,오디션에,회사진급에 있어서

혜택을 받고자한다면 이는 소원인가?

물론 당사자에게는 요행을 바랄수밖에 없는

간절한 바람이겠지만 이성적으로 바라보면

친구의 것을 빼앗으려는 탐욕에 물든 마음이다.

만약 그 소원을 들어주는 주체자가 신이라면

그 신은 정말로 공정한 신이라 할수 있는가?


공정한 신은 소원을 빌고 있는 

나의 손을 들어줘야 하는가?

신을 믿지는 않지만 실력있는 

친구의 손을 들어줘야 하는가?





답은 명확하다. 

실력이 부족한 나는 소원을 빌어야 할까?

아니면 지금부터라도 능력을 키워야할까?

그렇게 따지고보면 우리는 어떠한 소원을 빌거나

갈구하거나 요행을 바랄 이유가 없다. 


지금 묵묵히 나의 능력을 키우는 것이 

나의 소원을 달성하는 지름길이다.


만약 운이 좋았던, 로비를 했든, 아부를 했든

내가 원하는 자리나 직책에 올라설수는 있다.

과연 그것으로 불행끝 행복시작인가?

어차피 능력이 부족한 나는 그 높은 자리에서

오랫동안 버티지를 못한다. 

설령 버티더라도 온갖 눈치를 보거나 

무능력함으로 인해서 

좌절감을 맞보게 될지도 모른다. 


나의 능력으로 얻지 않았다는 것은

내 것이 아닌 남의 것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당장은 내가 그것을 취해서 기분이 좋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의 손에서 빠져나갈 것이다. 

내가 이룬 소원은 달콤했지만 내 삶을 병들게 한다. 

노래 실력이 없는 사람이 오디션에 합격했다면?

연기를 못한 사람이 대작영화에 출연했다면?

실력없는 사람이 대학교수가 되었다면?

고통의 수레바퀴는 곧 움직이게 될 것이다.



나는 어릴때부터 간절하게 신에게 소원을 빌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신다면

나의 영혼이라도 재물로 갖다 바친다고 했다.


어찌보면 우리의 소원은 현실에 머무르기 보다는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하는 두려움의 또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고통의 또다른 표현은 지금이라는 

현실을 딛고 일어나서

스스로의 삶의 주인이 됨으로써

자기의 삶을 성찰하라는 말이기도 하다.


주어진 현실에서 벗어날수 있는 사람은 없다. 




추천하지 않지만 아쉬운 몇가지 방법이 있다. 


술을 먹고 취한다. 

약을 먹고 취한다. 

잠을 자서 눈을 뜨지 않는다.

현실을 왜곡하고 부정한다. 

이상한 사이비 종교에 빠진다. 

정신이 여러 조각으로 분리 된다.

생각이 너무 많아져서 생각에 취한다. 

남탓하면서 일평생을 살아간다.

강박증에 걸려서 똑같은 말과 행동을 한다.

우울증에 걸린다. 


이렇듯 삶이 힘들때 우리는 간절해진다. 

아니 고통이 점점 심해지기 때문에 소원을 빌어야 한다. 

대다수는 자신이 노력한 것에 대해서

그만큼의 성취를 하고자 하는 마음일 것이다. 

나는 능력, 실력 이상의 것을 얻고자 발악하며 살았다. 

그렇게 소원을 빌고 욕망의 발톱을 드러낼수록

나는 그동안 이룬것을 하나씩 잃어갔다. 

많은 것을 잃고 나서 그것이 욕심임을 알았다. 

다시 빈손이 되었을때 나는 더이상 소원을 빌지 않았다. 


내가 믿을 것은 나의 두손이며

나의 두발이며

나의 심장이였다.


나의 능력과 실력을 키우는 것이

내가 할수 있는 소원을 이루는법이 되었다. 

나의 소원성취 기도법이다.



이 세상과 우주는 나의 편협된 생각으로 해석할수가 없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이상의 것이 존재한다. 

나는 그것을 부정하거나 외면하지 않는다. 

그 이상의 것은 나의 욕망을 들어주지 않는다. 

정해진 순리대로 나에게 다가올 것이다.

인과응보의 순리처럼...

사필귀정의 순리처럼...

업은 결국 주인의 품으로 들어간다. 


좋은 업(행위)을 지었다면 복을 받는 것이며

나쁜 업(행위)을 지었다면 벌을 받는 것이다. 


살다보면 반대의 결과가 나오기도 하지만

시간이 한참 지나면 그것이 맞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작동한다. 

나는 그리 생각하고 그리 믿는다. 

그래서 내가 소원을 이루는 주체자가 되어야 한다. 

이는 신의 존재유무나 신을 믿냐 안믿냐의 문제가 아닌

나의 능력으로 깔끔하게 자리에 올라가자는 것이다. 

신이 계시다면 이런 공정함을 원하지 않으실까?





나는 개인적으로 기도법의 시작은 회개(참회)에서

시작해서 감사(만족)로 끝난다고 생각한다. 


이 과정속에서는 우리의 욕망을 달성하기 위한

소원성취의 자리는 그리 많지 않다. 

회개를 통해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반성한다. 

감사함을 통해서 주어진 삶을 만족하며 살아간다.


이것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지혜롭고

행복한 삶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소원아닌가?


이제는 소원이라는 개념을 너무 막연하게 생각하기보다는

나의 노력으로 얻을수 있는 신이주신 축복이나 기회정도로

생각한다면 더 좋지 않을까?


그러면 눈물 흘리며 갈구하고 외치지 않아도 된다. 

어린시절 나처럼 영혼을 갖다 바치듯 빌지 않아도 된다.

눈물을 흘리면서 두려움속에서 살지 않아도 된다. 

행운이나 요행은 없지만 나의 두손으로 잡을수 있고

두발고 걸어갈수 있고

나의 심장으로 느낄수 있다면

그것이 최고의 기쁨이자 행복이라 생각한다. 




당신의 기도법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