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 행복칼럼

사람을 함부로 믿지 말아요(인간관계잘하는법)

김영국 행복명상센터 2018. 12. 28.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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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함부로 믿지 말아요(인간관계잘하는법)





인간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혼자서 살수가 없다. 

인간관계를 잘하면 삶이 행복해지지만

그 관계가 잘못되거나 깨지면 큰 고통을 겪는다.

오늘은 인간관계 잘하는법중

가장 중요한 한 개인의 믿음에 대해서 다뤄보고자 한다.. 


그럼 시작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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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장 숭고한 정신활동은 믿음이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남발한다. 

믿음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불변한 마음의 상태에 가깝다.

어떠한 조건에 따라서 변하는 것이 아니다. 

신이 내 기도를 들어주면 믿음이 생기고

기도를 안들어주면 불신이 되는건가?

그것과 상관없이 믿어야 하는데 

실제 우리들은 조건화된 믿음속에서 살아간다. 

자녀가 공부를 잘하면 믿을수 있는 아이가 되고

공부를 못하면 믿을수 없는 철부지 아이가 된다.

그럴듯한 논리지만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조건이라는 불순물이 들어간 이상

이미 그대가 말한 믿음은 오염이 된 것이다.

아니면 차라리 믿음이라는 단어를 쓰지 말고

거래라고 말을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우리는 내가 보고 싶은대로 믿는것이며

믿고 싶은대로 보는 것이며

듣고 싶은대로 믿는 것이며

믿고 싶은대로 듣는 것이다.

순수한 믿음이 아니라 나의 욕구나 결핍의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서 잠시 마음을 내준것일 뿐이다.

실제 믿음의 개념은 완벽한 확신과 더불어

지혜로운 안목과 더불어 인간에 대한 존중이 

담겨져 있으리라 생각한다. 

충분히 자아성찰이 되지 않았을때 

표출되는 믿음은 자칫 그대와 타인에게 

위험한 폭력이 될수가 있다. 

타인에게 믿음을 강요하는 사이비교주가 된다.

믿음이 아닌 맹신으로 교주의 노예가 된다.

믿음이라는 것은 더이상의 의심이 없는

완벽한 상태인데 우리는 너무 쉽게 믿음을 남발한다. 





그래서 잠시 생각해봤다. 

사람을 함부로 믿지 말아야할 몇가지 이유

(인간관계 잘하는법)



1. 정신적/육체적으로 힘들때 조심하라. 

이럴때 인간은 절박해지고 다급해진다. 

누구라도 내 손을 잡아주면 모든 것을 

다 갖다 바칠정도로 절실하다. 

이때는 지혜로움이 아닌 오로지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픈 생각이 가득하다. 

예를들어 어릴때부터 부모에게 학대를 당하며 살아온 사람은

누군가가 따뜻하게 말해주고 예쁘다고 하면

금세 마음이 열리면서 그 사람을 믿어 버린다.

그 중에 꼭 한두 사람은 나쁜놈들이 섞여 있다.

99명의 좋은 사람도 좋지만

한명의 악한 사람과의 인연은 그대의 삶을 

망가뜨릴 정도로 매우 위험하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을 차리면 살수 있듯이 

힘들수록 감정적으로 생각하지말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어찌보면 믿음은 감정보다 이성에 더 가깝다. 

좀더 깊이 들어간다면 지혜와 유사한 개념이다.

그대의 믿음을 너무 쉽게 주지 마라. 

믿음은 당신을 살리는 최후의 보류이다.



2. 사람은 믿는 대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대화하고 소통하는 존재이다.

이 표현은 결코 정답이 아니다. 

나의 엄마는 나에게 100% 믿음을 주셨다. 

신에 대한

부모에 대한

자신에 대해서나 완벽한 믿음이 가능하다.

나머지는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 그 끈인 믿음이라는

도구가 필요했을 뿐이다. 

그것이 영원불변한 믿음인양 착각하면 안된다.

어설픈 믿음은 시한폭탄과도 같다. 

쥐는 눈 앞에 있는 음식을 보고 100% 믿는다.

멧돼지는 눈 앞의 음식을 보고 100% 확신한다.

불나방은 따뜻하고 환한 불빛을 100% 인지한다.

쥐는 결국 쥐약을 먹고 죽는다. 

멋돼지는 결국 덫에 걸려서 잡힌다.

불나방은 결국 불속으로 들어가서 타버린다.

집착증에 걸려서 강박증에 빠져서 확인하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심리적 결핍이나 심리적 욕망등에 의해서 

드러내는 믿음은 자기맹신일 뿐이다.

더 공부하고

더 신중하며

더 이성적인 검증절차를 거치며

주변 사람들에게도 조언을 구하는등

충분히 건강한 소통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 

자기 마음하나조차도 잘 모르고 살아가는데

어찌 함부로 누군가를 쉽게 믿을수 있겠는가?




3. 내가 손해보고 희생할 각오가 있다면 믿어라. 

나의 엄마가 나에게 준 믿음은 사실 희생이다. 

이러 뉘양스의 느낌을 나는 전혀 받지 않았다.

" 엄마를 너를 믿으니까 네가 잘해야해 "
오히려 나의 엄마는 이런 느낌을 주었다.

" 네가 뭘해도 엄마는 널 믿어줄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하고 싶은대로 살아라 "
단 한번도 변함이 없었다. 

믿음이라는 것은 나의 믿음을 상대방에게 자랑하듯

경고하듯 알려주는 정신적인 행위가 아니다.

내가 그 사람에게 충분히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음을

그 사람을 나처럼 믿고 사랑해줄 마음이 있음을

정직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희생, 인내, 기다림, 사랑등의 정서가 깔려있다. 

이런 마음이 있지 않고서는 믿음이라는 감정은

말처럼 쉽사리 생겨나지 않는다. 

노력한다고해서 되어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믿음은 그 사람의 그릇이다. 

내 그릇이 1정도 되면 다른 사람을 1만큼 믿는다. 

내 그릇이 100이면 다른 사람을 100만큼 믿는다.

다른 사람을 믿을 생각을 하지 말고

자신을 먼저 믿어주고 마음을 넓히는데 주력해야 한다.



4. 몇번보고 이야기하고 직감으로 판단하지 마라. 

어릴때 혼자되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나를 사람을 엄청나게 좋아했다. 

아무에게나 쉽게 말걸고 누구라도 금방 친해졌다.

나는 세상 모든 사람들을 좋게 봤다.

다 믿으면서 살아왔다. 

쉽게 사람을 판단해버렸다. 

나에게 조금이라도 잘해주고 웃어주면 그냥 좋은 사람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얼마나 위험한 생각이였는지를

뒤늦게 깨달았다. 

물론 이를 깨닫기 위해서 나는 많은 마음의 상처와

배신과 후회와 불신과....

그렇게 사람을 좋아하고 따르던 내가 어느순간

사람을 싫어하고 불신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런 불신의 마음을 되돌리는데 오래 걸렸다. 

어찌보면 어설픈 믿음을 갖는 자는 나중에 

사람에 대한 불신과 함께 대인기피증이 생길 확률이 높다.

사람을 믿었다가 결국 상처를 받으면서 불신이 생긴다.

쉽게 사람을 믿지 말고 많이 이야기하고 

대화하고 자주 만나면서 알아가도 늦지 않는다.




5. 붓다의 가르침

제자가 붓다에게 물어본다.

" 어떤 사람을 스승으로 모셔야 합니까?"

그러자 붓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확한 문구는 아니고 제가 양념을 조금 침)

의심하고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지를 확인하라.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그 사람의 

모습이 한결같으며 더이상 의심할 것이 없을때 

그를 마음 다해 스승으로 모셔라.

나는 이 대목에서 믿음의 실체를 엿볼수 있었다. 

어찌보면 믿음은 의심에서 생겨난다.

과학이 호기심에서 생겨나듯...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아는 의심을 말하는것은 아니다. 

마음의 문을 닫은채 삐딱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의 문을 활짝 연뒤 건강하게

그 사람과 소통을 대화를 하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그런 과정속에서 확고한 믿음이

생겨날수밖에 없다. 

그런 의심의 조각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간다. 

즉, 믿음은 처음부터 온전하게 만들어진 전체의 개념이 아니라

작은 것부터 만들면서 키워나가는 과정의 개념이다.

믿음은 만드는 것이다.

  


남을 믿을 시간에 나부터 많이 믿어주자.

내가 고통받더라도 믿을만한 가치가 있을때 믿자.

믿음을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이자.

상대방에게 믿음을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다.

건강한 의심과 확인은 믿음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믿음을 갖고 싶다면 지혜로운 사람이 되자.

믿음은 자신과 타인을 편안하게 해준다.

그 믿음의 나와 타인의 관계를 좋게 유지해준다.


한국 최면치유 연구소장 

김영국